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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반

내생적 성장 이론: 지식과 혁신이 만드는 끝없는 성장의 가능성

by issuevoice 202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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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내생적 성장 이론은 기술진보와 인적자본 축적이 경제 시스템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지식 투자와 혁신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끈다는 새로운 경제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창가에 놓인 지구본이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을 비추고 있으며, 옆에는 녹색 식물이 있는 사진입니다.
글로벌 경제의 이해: 내생적 성장 이론이 바라보는 세계 ❘ =출처 : 픽사베이

경제성장의 원천을 찾아서

20세기 중반까지 경제학자들은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왜 어떤 나라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어떤 나라는 정체되는가? 전통적인 성장 이론은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 증가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자본을 계속 투입해도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에 성장률은 점차 둔화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이 수십 년간 보여준 지속적인 성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980년대 중반, 폴 로머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내생적 성장 이론이다. 이 이론은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인 기술진보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 내부에서 의도적인 투자와 혁신 활동을 통해 창출된다고 주장한다.

외생에서 내생으로: 성장 이론의 패러다임 전환

내생적 성장 이론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이전의 경제성장 이론을 살펴봐야 한다. 1950년대 로버트 솔로우가 제시한 신고전파 성장 모형은 오랫동안 경제성장 분석의 표준이었다. 솔로우 모형은 기술진보를 외생변수(exogenous)로 두었는데, 이는 당시 분석의 단순화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나, 기술진보가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모형 밖에 남겨두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폴 로머, 로버트 루카스 등 경제학자들이 솔로우 모형의 외생적 기술진보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특히 로머는 1990년 논문에서 지식의 비경합성과 불완 배제성, 연구개발에 대한 의도적 투자, 독점적 경쟁을 결합해 기술진보를 완전히 내생화시키는 모형을 제시하며 내생적 성장 이론의 주류를 열었다.

일반 재화와 달리 지식은 한 사람이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이 축적될수록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가 더 쉬워진다. 이러한 통찰은 경제학에 혁명을 가져왔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내생적 성장 이론은 경제성장 연구의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오늘날에도 교육·R&D 정책의 이론적 기초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내생적 성장 이론의 핵심 메커니즘

내생적 성장 이론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간단하면서도 강력하다. 경제 주체들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인적자본을 축적하면, 이것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고, 이는 다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지식의 특수성'이다. 지식은 비경합성(non-rivalrous)과 불완전 배제성(imperfectly excludable)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즉, 한 사람이 사용해도 다른 사람의 사용이 줄어들지 않으며, 특허 등 법적 장치가 있더라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기업들은 연구개발에 투자할 인센티브를 갖게 되고, 동시에 그 지식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인적자본의 축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육을 받고 기술을 습득한 노동자들은 더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기존 기술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다. 이처럼 내생적 성장 이론은 지식과 인적자본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자기 강화적인 성장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정책적 함의: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

내생적 성장 이론이 경제학계를 넘어 정책 입안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친 이유는 명확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신고전파 이론에서는 장기 성장률이 외생적으로 결정되므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내생적 성장 이론은 정부 정책이 장기 성장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연구개발에 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은 기업들의 혁신 활동을 촉진한다. 둘째, 교육과 직업훈련에 대한 공공투자는 인적자본을 축적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인다. 셋째, 지식재산권 보호는 혁신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보장함으로써 연구개발 투자를 유인한다. 넷째,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은 민간 부문이 과소투자하기 쉬운 영역에서 지식의 기반을 넓힌다.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1970~80년대부터 교육과 연구개발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왔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1990년대에 등장한 내생적 성장 이론의 정책 처방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게 되었다. 다만 정부 개입의 적절한 수준과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으며, 시장 왜곡을 최소화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혁신을 촉진하는 정책 설계가 중요하다.

이론의 빛과 그림자

내생적 성장 이론은 분명 경제성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진전시켰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장점을 살펴보면, 이 이론은 기술진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경제 모형 안에서 설명함으로써 성장 이론을 더 완전하게 만들었다. 또한 왜 국가 간 소득 격차가 지속되는지, 왜 어떤 정책은 성장에 효과적이고 어떤 정책은 그렇지 않은지를 설명하는 틀을 제공한다. 특히 지식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의 특성을 잘 포착한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하다. 첫째, 모형이 복잡하고 수학적으로 까다로워 실증 분석이 어렵다. 지식이나 인적자본을 정확히 측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론의 예측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다. 둘째, 모든 국가가 연구개발에 투자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성장률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 환경, 문화적 요인, 지리적 조건 등 다른 변수들도 중요한데, 이론이 이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셋째, 지식의 파급효과가 실제로 얼마나 큰지, 그것이 정말 수확체증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경험적 증거가 혼재되어 있다. 넷째, 이론이 제시하는 정책 처방이 때로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정부가 항상 효율적으로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실패의 위험도 크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향한 여정

내생적 성장 이론은 경제성장이 단순히 자본과 노동을 더 투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더 똑똑하게 일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느냐의 문제임을 일깨워준다. 이는 특히 자원이 한정된 시대, 환경 제약이 커지는 시대에 중요한 메시지다. 물질적 투입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지만, 지식과 아이디어의 발전은 이론적으로 한계가 없다. 물론 이론과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 모든 국가가 교육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의 질, 사회적 자본, 기업가정신, 시장 개방도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생적 성장 이론이 제시하는 방향성은 명확하다. 지식에 투자하고, 인재를 키우고, 혁신을 장려하는 것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이라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인공지능, 생명공학, 신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기술 영역에서 지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생적 성장 이론은 단순한 학문적 관심을 넘어, 국가와 기업, 개인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성장의 원천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인식, 그리고 그 내부 역량을 키우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야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갈 나침반이 될 것이다.

 

 

용어정리

  • 내생적 성장 이론: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기술진보와 생산성 향상이 경제 시스템 외부가 아닌 내부의 의도적인 투자와 혁신 활동을 통해 발생한다고 설명하는 경제이론
  • 외생변수: 경제 모형에서 모형 내부의 다른 변수들에 의해 설명되지 않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가정되는 변수
  • 수확체감의 법칙: 다른 생산요소를 고정한 채 한 가지 생산요소만 계속 투입하면 추가 투입에 따른 생산량 증가분이 점차 감소하는 현상
  • 수확체증: 생산요소의 투입량이 증가할 때 산출량이 투입량 증가율보다 더 크게 증가하는 현상
  • 인적자본: 교육, 훈련, 경험 등을 통해 축적된 개인의 지식, 기술, 능력으로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무형의 자본
  • 비경합성: 한 사람이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해도 다른 사람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는 특성으로, 주로 지식이나 정보재가 이러한 성질을 가짐
  • 배제가능성: 재화나 서비스의 소유자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의 사용을 막을 수 있는 특성
  • 지식재산권: 특허, 저작권, 상표권 등 지식이나 창작물에 대한 법적 독점권으로, 혁신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보장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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