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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반

경기순환을 기술혁신으로 설명하는 실물 경기순환 이론의 명과 암

by issuevoice 2025.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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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경기순환 이론은 경제의 호황과 불황이 정부나 중앙은행의 정책 실패가 아니라 기술 변화와 생산성 충격이라는 실물적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이론은 1980년대 등장하여 경제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시장의 자율조정 능력을 강조하면서 정부 개입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분지형 물줄기가 어둡고 광활한 황무지를 가로 지르는 사진입니다.
자연스러운 경기순환의 여정 ❘ 출처 : 픽사베이

경제위기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시각

1970년대 세계 경제는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높은 실업률과 높은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은 당시 주류였던 케인즈 경제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였습니다. 케인즈 이론은 불황기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처방이 오히려 물가만 올리고 경제는 살아나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82년 경제학자 핀 키들랜드와 에드워드 프레스콧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경기순환이 정부의 정책 실패나 시장의 비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기술혁신과 생산성 변화라는 자연스러운 실물적 요인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물 경기순환 이론의 시작이었으며, 이들은 이 업적으로 200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기술충격이 만들어내는 경제의 파도

실물 경기순환 이론의 핵심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경제가 좋아지고 나빠지는 이유는 기술의 발전과 퇴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생산성이 올라가고, 기업들은 더 많은 생산을 위해 근로자를 고용하며, 임금이 상승하고 소비가 늘어나면서 경제 전체가 호황을 맞이합니다. 반대로 기술 발전이 정체되거나 예상보다 느리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며, 고용이 감소하고 경제는 침체에 빠집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입니다. 근로자들은 임금이 높을 때는 더 많이 일하고, 낮을 때는 여가를 즐기는 선택을 합니다. 기업들은 생산성이 높을 때 투자를 늘리고, 낮을 때는 투자를 미룹니다. 이러한 합리적 선택들이 모여서 경기순환이라는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 이론의 설명입니다. 정부나 중앙은행의 개입 없이도 시장은 스스로 최적의 상태를 찾아간다는 주장이기에, 이 이론은 자유시장 경제학의 강력한 이론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정부 개입 불필요론의 이론적 근거

실물 경기순환 이론이 경제학계와 정책 입안자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만약 경기순환이 기술충격이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의 결과라면, 실물 경기순환 이론의 초기 버전은 경기변동이 주로 기술충격에서 비롯된다면 정부의 단기적 경기안정화 정책(특히 임의적 재량 정책)은 효과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타이밍 오류나 정치적 왜곡 때문에 오히려 경제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정책은 규칙에 기반한(rule-based) 안정적인 틀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적 함의(policy implication)를 도출했습니다. 왜냐하면 경제 주체들은 이미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황기에 사람들이 일을 덜 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임금이 낮아서 여가를 선택하는 합리적 결정입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내면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부담만 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와 대처 정부의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정책에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했습니다. 실물 경기순환 이론은 또한 경제 모형을 구축하는 방법론에서도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동적 확률 일반균형 모형이라는 정교한 수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미시적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거시경제 전체의 움직임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현대 거시경제학의 표준적 도구가 되었으며, 중앙은행들도 정책 결정에 이러한 모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실과의 괴리가 드러내는 한계

하지만 실물 경기순환 이론은 등장 초기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습니다. 과연 1930년대 대공황이나 2008년 금융위기를 기술충격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대공황 당시 갑자기 기술이 퇴보한 것도 아니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측정된 TFP 급락은 순수 기술 퇴보 자체라기보다는 금융마찰·신용경색으로 인한 자원배분 왜곡과 설비가동률 하락이 크게 반영된 결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순수한 실물 경기순환 모형(금융요인을 배제한 버전)만으로는 위기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오히려 금융시스템의 붕괴, 신용경색, 총수요의 급감 같은 화폐적·금융적 요인들이 핵심 원인이었습니다. 실물 경기순환 이론은 이러한 금융위기나 은행 패닉, 버블과 같은 현상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한 실업 문제에 대한 이 이론의 설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불황기에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비자발적 실업이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경기순환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기술충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측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론에서는 기술충격을 모형의 잔차, 즉 설명되지 않는 부분으로 계산하는데, 이는 순환논리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경기변동을 기술충격 탓으로 돌리고, 기술충격의 존재를 경기변동으로 입증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의 진화와 절충의 시대

이러한 비판에 직면하여 실물 경기순환 이론은 점차 진화해 왔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순수 실물 경기순환 모형(금융마찰·가격/임금 경직성 등을 배제한 버전)을 고수하는 연구는 거의 사라졌으며, 대부분의 거시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포함한 확장된 DSGE 모형을 사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의 거시경제 모형들은 실물 경기순환 이론의 방법론을 유지하면서도 케인즈 경제학의 요소들, 즉 가격경직성이나 시장불완전성 같은 개념들을 통합하고 있습니다. 이를 신케인즈주의 동적 확률 일반균형 모형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주요 중앙은행들이 사용하는 정책용 DSGE 모형은 실물 경기순환 이론이 확립한 미시기초·합리적 기대·동적 최적화 방법론을 공통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대다수 모형은 가격·임금 경직성 및 금융마찰 등 뉴케인지안 요소를 핵심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실물 경기순환 이론의 방법론적 유산은 남아 있지만, 순수한 이론 자체가 아니라 뉴케인지안과 결합된 형태로 살아남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기

실물 경기순환 이론은 경제학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이 이론은 경기순환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제공했고, 시장의 자율조정 능력에 대한 신뢰를 강화했으며, 거시경제학 연구 방법론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기술혁신과 생산성 변화가 장기적 경제성장과 경기변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모든 경기순환을 오직 기술충격으로만 설명하려는 순수한 형태의 이론은 현실 설명력에서 한계를 보입니다. 금융위기, 신용경색, 수요 부족, 비자발적 실업 같은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케인즈적 관점과 제도적 요인들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오늘날 경제학계는 어느 한 이론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독단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들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경제정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의 효율성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절히 개입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합니다. 실물 경기순환 이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어느 하나의 설명만을 맹신하지 말고, 여러 시각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어정리

  • 스태그플레이션 (Stagflation):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과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경기가 나쁜데도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 케인즈 경제학 (Keynesian Economics):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제시한 이론으로, 불황기에는 시장이 스스로 회복하지 못하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기술충격 (Technology Shock): 생산성을 변화시키는 예상치 못한 기술 변화를 의미하며, 새로운 발명이나 혁신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거나 반대로 기술 발전이 정체되는 상황을 포함합니다.
  • 동적 확률 일반균형 모형 (Dynamic Stochastic General Equilibrium Model, DSGE): 시간의 흐름과 불확실성을 고려하면서 경제 전체의 균형을 분석하는 수학적 모형으로,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서 출발하여 거시경제 현상을 설명합니다.
  • 비자발적 실업 (Involuntary Unemployment): 현재 임금 수준에서 일할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자발적으로 여가를 선택하는 것과는 다르며, 실물 경기순환 이론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이 이론은 모든 실업을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인 선택에 의한 자발적 실업으로 간주합니다. 
  • 신케인즈주의 (New Keynesian Economics): 케인즈 경제학의 핵심 통찰을 유지하면서도 미시경제학적 기초와 합리적 기대 개념을 통합한 현대적 거시경제 이론입니다.
  • 가격경직성 (Price Rigidity): 시장 상황이 변해도 가격이 즉시 조정되지 않고 일정 기간 고정되어 있는 현상으로, 메뉴 비용이나 계약 등의 이유로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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